[한현우의 인간正讀]
세계 최대 자전거 회사'자이언트' 창업주 류진뱌오 前회장
"50세 돼서야 휘청이지 않게 돼… 두려워 말고 첫걸음부터 떼라"
73세에 첫번째 전국 일주
'뭐든 지금 당장 안하면 영원히 못한다' 영화 속 주인공 보고 대만 일주 결심
80세에 두번째 전국 일주 도전 12일 만에 완주… 7년전보다 3일 단축
산 넘고 물 건너 1000㎞ 질주
내 힘으로 바퀴 굴려야 한다는 인생의 법칙 깨달아
45년 전 “자전거 탈 줄만 알았지 자전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류진뱌오 회장은 자이언트를 세계 최대 자전거 회사로 키워냈다. 그가 보여주는 자전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전거’라는 별명을 얻은 ‘프로펠’ 모델. 카본(탄소섬유) 프레임으로 자전거 전체 무게가 7㎏ 안팎에 불과하다. / 타이중(대만)=한현우 기자
대만 사람들은 '평생 한번 해봐야 할 일'로 두 가지를 꼽아왔다. 대만 최고봉 위산(玉山·3952m) 등반과 최대 호수 르위에탄(日月潭) 횡단 수영(330m)이다. 지난 2007년 한 가지가 늘었다. 자전거 타고 대만 한 바퀴 돌기(臺灣環島·966㎞)다. 그해 73세 노인이 이 일을 해내면서부터다. 이 노인은 80세이던 2014년 '자전거 대만 한 바퀴'를 한 번 더 돌았다. 73세 때는 완주에 15일이 걸렸는데 7년 뒤엔 12일로 빨라졌다. 사람들은 "늙을수록 빨라진다"며 놀랐다. 세계 최대 자전거 회사인 '자이언트' 창업주 류진뱌오(劉金標·83)씨 이야기다.
대한민국 3분의 1 크기 섬에 2300만명이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세계 최대 자전거 회사가 있는 것은 오로지 류씨 덕분이다. 그리 오래된 회사도 아니다. 올해 창업 45주년을 맞았다. 1972년 직원 38명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전 세계 80국에 1만2000개 매장과 2만여 직원을 두고 있다. 연간 생산량 700만 대, 매출 19억달러(약 2조400억원)로 미국과 유럽의 자전거 강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세계 1위가 됐다. 자전거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인 카본(탄소섬유) 자전거를 처음 대량생산한 회사도 자이언트다. 최근 류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 '자전거 타는 CEO'(OCEO 刊)가 국내에 번역 출판됐다. 지난 12일 타이베이로 날아간 뒤 다시 자동차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을 달려 타이중(臺中)에 닿았다. 류씨의 고향이자 자이언트 본사가 있는 곳이다. 그는 작년 말 아들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은퇴했다.
"지금 안 하면 영원히 못 한다"는 말 한마디
자이언트 대변인 켄 리씨는 "'회장님' 대신 '뱌오거(標哥·뱌오 형님)'라고 부르면 매우 좋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물론 직원들도 83세 창업주를 '형님'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한국에서 80대 어른에게 제가 '형님'이라고 하면 야단맞을 텐데요.
"하하하. 대만은 좀 다릅니다. 나이 차가 있어도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사실 '뱌오거'란 말엔 존경의 뜻도 있습니다. '회장님'이라고 부르면 자연스레 상하관계가 되잖아요. 내가 먼저 젊은 사람들에게 '뱌오거'라고 불러달라고 합니다. 함께 자전거 타는 사람 중에 10대 아이들도 나에게 '형님'이라고 해요."
류씨는 2006년 대만 영화 '연습곡'을 보고 난 뒤 '대만 일주'를 결심했다. 이 영화는 청각 장애가 있는 남자 대학생이 기타를 메고 자전거로 대만을 일주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그 영화의 어떤 점 때문에 대만 일주를 결심하게 됐습니까.
"영화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대만 일주를 하는데 누군가 묻습니다. '왜 학교에 안 가고 자전거를 타느냐'고요. 그때 주인공이 답하죠. '무엇이든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한다'고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당장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007년 73세 나이로 대만 한 바퀴를 완주했을 때의 류진뱌오 회장. 그는 “내가 해냈다. 해냈어!”라고 소리질렀다고 했다. / 자이언트
―왜 하필 자전거 대만 일주였습니까.
"서른여덟 살에 이 회사를 창업해 줄곧 자전거를 만들었는데 자전거를 탈 줄만 알았지 '진짜 자전거'를 탄 적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자전거로 대만 일주를 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지만 머릿속으로만 생각했지 다리는 말을 안 듣더군요. 또 이 나이에 그렇게 먼 거리를 가다가 길에서 뭔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생각해보니 모두 핑계였습니다. 미룰수록 더 늦어진다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바로 '대만 일주'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전에 탔던 자전거와 대만 일주 자전거의 어떤 점이 다릅니까.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자전거는 가난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타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지요. 그렇지만 자전거로 1000㎞ 가까운 거리를 산 넘고 물 건너 가면서 나는 73세에 인생을 깨달았습니다. 100퍼센트 내 힘으로 바퀴를 굴려야 하고 어떤 운도 끼어들 수 없는, 그 인생의 법칙을 말이에요."
―건강도 좋아졌다던데요.
"처음 대만 일주할 때 나는 허리 디스크가 재발한 상태였습니다. 63세에 위암에 걸려 그 수술 후유증으로 혈전정맥염을 앓고 있었고 고혈압에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았어요. 또 수면무호흡증 때문에 호흡기 없이는 잠을 자지도 못했습니다. 첫 대만 일주 이후 매일 자전거를 탔고 7년 뒤 두 번째 대만 일주를 할 때는 모든 병들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출발하기 전 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표에 '주의'를 뜻하는 빨간 글자가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 혈압은 어느 정도입니까.
"120에 70 정도입니다."
―자전거 타기 전에는요.
"145에 90이었습니다."
―건강 때문에 '자전거 전도사'가 된 건가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능력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절대로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언덕을 자전거로 올라가는 나를 보면서, 내 능력이 내 생각보다 한참 넉넉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누구나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하기 쉽습니다.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그걸 찾아냈어요."
73세에 깨달은 인생의 법칙
―책에 '한계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바보 같아야 한다'고 썼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2009년에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하루 80㎞를 달리는 일정이었는데 자전거에 달린 GPS가 고장나 길을 헤매게 됐어요. 한참을 헤매 간신히 목표에 닿았더니 그날 120㎞를 탄 거예요. 내가 120㎞를 달리다니! 절대로 하루 100㎞ 이상은 달릴 수 없다고 생각했고 120㎞를 탄다고 했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바보처럼 헤매다 보니 어느 순간 내 한계를 넘어선 거예요. 때로는 그렇게 바보 같아야 자신의 능력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이성적으로 계산하기만 해서는 발견할 수 없는 거죠."
―그렇게 찾은 능력이 회사 경영으로 이어졌군요.
"73세 나이에 전국 일주를 하고 나니 '나는 늙었어' '늙으면 이런 병을 피할 수 없는 거야' 같은 생각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나는 늙지 않았어' '아직도 배울 게 너무 많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레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졌습니다. 나는 젊은이들보다 내 또래 사람들에게 더 세대 차이를 많이 느낍니다."
―무슨 뜻인가요.
"나는 82세에 은퇴했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왜 늙어서까지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했어요. 그들은 늦어도 75세쯤에는 은퇴했습니다. '이제 늙었으니 편하게 살자'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이 젊다는 것은 공부할 게 많다는 거예요. 아직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사람입니다."
75세이던 2009년 중국 베이징~상하이 1660㎞ 구간을 달릴 때의 류진뱌오 회장(왼쪽). 당시 만났던 74세 중국 농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는 “내가 이 사람보다 한 살 많다. 그렇게 보이느냐. 자전거 타는 재미가 이런 것”이라고 웃었다. / 자이언트
세계 최초 카본 자전거 생산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류씨는 "공부를 못해서" 대학에 가지 않고 젊을 때부터 사업을 벌였다. 통조림 공장, 밀가루 공장, 목재 공장, 기계 부품 공장, 운수업, 장어 양식업…. 대부분 2~3년 만에 접은 사업들이었다. 특히 마지막 장어 양식장은 태풍이 불어닥친 어느 날 완전히 파괴돼 하룻밤 새 2000만 대만달러(약 8억원)를 날리며 망했다. 1970년대 초 2000만 대만달러는 엄청난 액수였다.
그가 1972년 친구와 함께 '자이언트 머신'이란 회사를 세울 때 그는 "미국 자전거 시장이 유망하다더라"는 말을 듣고 막연히 시작했다. '자이언트'는 당시 청소년 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대만 야구팀 이름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만들면서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전거 사업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딱히 자전거 제조업에 끌린 이유가 있습니까.
"그때 서른여덟 살이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여기저기 기웃거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난관에 부딪히면 어떻게든 뚫고 나가겠다고 결심했어요. 자전거 부품 규격이 들쭉날쭉인 것을 보고 일본공업규격(JIS)처럼 대만공업규격(CNS)을 만들었지요. 미국과 유럽에 OEM 수출을 하다가 1981년 '자이언트'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카본 프레임 자전거를 자이언트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자전거 속도를 올리려면 자전거 무게를 줄이는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유럽에서 카본 자전거를 만들었지만 대량생산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카본 자전거에 회사 사활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1991년 미국으로 처음 수출했던 카본 자전거 1000여 대에서 결함이 발견돼 전량 리콜해야 했다. 그는 전 직원을 불러 모은 뒤 회사 앞에 큰 구덩이를 파고 리콜된 자전거를 모두 묻었다. 회사의 혁신 제품 1호가 고스란히 생매장되는 것을 보고 직원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품질이 나쁘면 이렇게 된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품질이 기업의 생명인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주 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지요." 현재 그 자전거 묘지 위에는 자이언트의 카본 자전거 공장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 공장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전거'라고 불리는 모델 '프로펠(Propel)'이 탄생했다. 2012년 자이언트는 '세계 최대 자전거 회사' 자리에 올랐다.
새 자전거 1000대를 땅에 묻다
류씨는 2012년 타이베이를 시작으로 공공 자전거 사업에도 진출해 대만의 명물 '유바이크(YouBike)'를 만들었다. 서울 '따릉이' 같은 자전거 대여 서비스다. 이사진 전원이 "적자 낼 것이 뻔하다"며 반대했으나 류씨가 밀어붙였다. 그는 "자전거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대만의 문화가 되려면 공공 자전거가 필수이며, 그 사업은 자이언트가 사회적 책임을 갖고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스키 타러 스위스에 가듯이 자전거 타러 대만에 오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업가'와 '기업가'는 다르다고 했는데 이를테면 공공 자전거가 '기업가'의 일이군요.
"사업가는 눈앞의 이익만 좇는 사람이고 기업가는 5년 뒤, 10년 뒤를 예측하는 사람입니다. 회사 중진들이 모두 반대했었지만, '유바이크'를 타고 자전거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자이언트 매장을 찾습니다. 대만 TV에 '성공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매일 나오는데 성공한 사람은 말로 떠들지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걸어나간 사람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의 외손자가 미국에서 유학한 뒤 월스트리트에 취직하자 "좋은 직장이 아닌 것 같으니 너무 오래 다니지 않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었다고 책에 썼다.
―왜 그렇게 말씀했습니까.
"그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돈 벌 수 있는 기회만 잡으려고 합니다. 기회를 낚아채서 부자가 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버는 돈과, 자신의 힘과 시간을 들여 버는 돈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 일은 사고파는 타이밍에 따라 큰돈을 벌 수도 있고 완전히 파산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투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투기'라고 부릅니다."
"50세가 돼서야 흔들리지 않게 됐다"
류씨는 책에서 "50세가 돼서야 휘청이지 않게 됐다"고 했다. 50세는 그가 '자이언트' 브랜드를 만들어 자립해 나가던 때다.
―20~30대 젊은이들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실패하는 경험에서 공부해야 합니다. 첫걸음을 떼어야만 두 번째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한 번에 성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무엇보다 의지가 강해야 하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실패할까봐 시작하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해요."
―그 '공부'란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다른 겁니까.
"나는 '학교에서 10년 배우는 것보다 거리에서 1년 배우는 게 더 낫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거리에서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지혜가 더 중요합니다."
"83세에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사람은 '뱌오거'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하자 그는 껄껄 웃었다. 그가 "아까 만난 우리 회사 이사회 의장이 몇 살인 것 같으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70세"라고 했다. 2007년 처음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자전거 기어 바꾸는 법도 몰랐다는 그녀는 이후 철인3종 경기를 2회 완주했다는 사람이었다. 50대 후반쯤이라 생각했기에 깜짝 놀랐다. 인터뷰에 배석한 대변인과 홍보실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연달아 "나는 몇 살인 것 같으냐"고 물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흔한 질문'이었다.
[한현우 기자 hw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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